金仁植
仁植1864. 1. 20 ~ 1939. 11.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임자동밀맹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1864년 1월 20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에서 출생하였다.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고 자(字)는 사흥(士興)이며, 호(號)는 독수재(篤守齋)·하석(霞石)이다. 어릴 때 불리던 이름은 옥경(玉經)·홍식(洪植)·복경(復經)이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고종황제에게 수차례 소(疏)를 올리고 자결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907년 9월 전북 진안군(鎭安郡)에서 기의(起義)하여 전북 일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던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은 1908년 9월경 임실군(任實郡) 일대 전투에서 패한 뒤 의병부대를 해산하고 활동 재개를 위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국내에서의 의병 항쟁이 어렵게 되자 이석용은 중국으로 활동 지역을 옮겨 항일 투쟁을 지속하려고 하였고, 이를 위해 1912년(壬子年) 겨울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을 조직하였다. 이 비밀결사는 이석용을 단장으로 하여 정찬석(鄭贊錫)·최제학(崔濟學)·이규진(李圭鎭)·최병심(崔秉心)·김병주(金炳周)·최창열(崔滄烈) 등 20여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김경호(金景浩), 조성민(趙成珉) 등과 함께 남원(南原) 지역을 담당하였다. 특히 이석용이 만주 지역에서 의병부대를 재조직할 수 있도록 남원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의병장 이석용이 1913년 겨울 붙잡혀 1914년 순국하자 향리에 은신하여 후학들을 교육하였다. 유고(遺稿)는 손자인 김영기(金永基)가 1958년 『독수재유고(篤守齋遺稿)』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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