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泰
永泰1882 ~ 1921. 1.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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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도 알 수 없으나 서간도 지역에서 같은 고향 출신의 김영하(金永河), 김홍수(金洪洙)와 함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여 의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4월경 서간도 지역의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형성된 항일무장투쟁단체로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독립에 대한 민족적 염원 아래 출범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 자치 기관을 표방하였다. 서로군정서의 주력부대인 의용대(義勇隊)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의용대의 주된 작전은 국경을 넘나들며 일제 관공서 및 주재소를 습격·파괴하고, 일본 경찰대와의 교전을 통해 일본군 병력을 소모시키는 한편, 친일부역자와 밀정을 색출하여 처단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및 간도 지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국경 지역과 간도 일대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는 독립군으로 골머리를 앓던 일제는 1920년 10월 간도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인 독립운동 단체를 소멸할 목적으로 ‘훈춘 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대규모의 정규군을 간도 지역에 출병시켰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단체의 기반이 되었던 간도지역 한인 사회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은 수천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서로군정서는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여 본부를 북만주 지역의 액목현(額穆縣)으로 옮긴 뒤 안도현(安圖縣)에 군사 기지를 두고 이후로도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서로군정서의 의용대원으로 일본군에 맞서 전투에 임하던 중 1921년 1월 27일 동료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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