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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갑천

朴甲天

1913. 3. 22 ~ 1997.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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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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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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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대구 군용열차전복미수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913년 3월 22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아포면(牙浦面) 제석동(帝錫洞)에서 박승권(朴勝權)과 엄일선(嚴日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포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 2년 만에 그만두고 집안 농사를 도왔다. 19세 때이던 1931년 12월 2일 밤 10시, 동네 선배 김복만(金福萬)·김일조(金壹兆)와 후배 장삼조(張三兆) 등 3인과 함께 고향인 제석동과 이웃마을 국사동(國士洞) 사이 경부선 철로에서 김천역과 구미역(龜尾驛) 사이의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이후 철로 곁의 토관표목(土管標木) 2개, 무단통행 경고판 1개, 곡선표석(曲線標石) 1개와 각각의 받침대를 뽑아다 선로 위에 걸쳐놓거나 세워놓았다. 1931년 9월의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 이후 부산발(釜山發) 만주행 군용열차의 경부선 통행이 빈번해진 사실에 불만을 품고서 기차 전복까지도 염두에 두고 벌인 항일행동이었다. 이 사실이 이튿날 오전에 철도순시원에게 발각되어, 수사 개시 며칠 만에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 송치되었다. 1932년 3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왕래 방해(기차전복 미수) 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그 해 4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그 즉시 대구형무소로부터 김천소년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1933년 9월 19일 가출옥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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