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最明
最明1897. 1. 27 ~ 1964. 5.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대한독립단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1920년 미국 의원단 동아시아 방문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97년 1월 27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면(宣川面)에서 김득찬(金得贊)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호는 선우(仙愚)이며, 이명으로 한동근(韓東根)을 사용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서기 위해 그 해 5월 중국 안둥현(安東縣)으로 망명하였다. 국경을 넘어 만주에 있는 독립군 부대를 찾아가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1919년 말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은 이후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로 통합되었다. 이곳에서 독립군이 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과 『신한청년(新韓靑年)』을 국내로 운반하고 배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20년 4월에는 관뎬현(寬甸縣)에 근거를 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도 가입하였다. 이곳에서 단장인 오동진(吳東振)의 계획에 따라 미국 의회 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 맞추어 의거를 준비하였다. 1920년 8월 미국 상·하원 100여 명이 한국을 시찰하는 일정이 알려지자, 이에 맞춰 한국이 일제의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독립 의지를 국제 여론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서울·평양(平壤)·선천과 의주(義州) 방면에서 만세운동과 의거를 일으켜 우선 미국의원단의 주목을 끌고 독립청원서를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해당 계획에 대하여 임시정부 노동국(勞動局) 총판(總辦) 안창호(安昌浩)의 연락을 받은 광복군총영 사령부 참모장 이탁(李鐸)은 이를 실행에 옮길 것을 지시하며 3개 행동대를 편성하여 국내에 파견하였다. 이와 같은 임무를 띠고 김영철(金榮哲)·김성택(金聖澤)과 함께 폭탄과 권총, 실탄 127발을 가지고 서울로 파견되었다. 1920년 7월 서울에 도착한 뒤 한동근(韓東根)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8월 24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경고문을 시내에 배포할 계획이었다. 종로경찰서를 선택한 것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경찰서였기에 이곳을 파괴하면 미국의원단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겠다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8월 21일 함께 파견된 동지들과 거사를 준비하던 중 서울 황금정에 있는 음식점 아서원(雅敍園)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자 항소하였다. 같은 해 3월 최종적으로 징역 10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김성택 등과 함께 7년 2개월로 감형되었고, 1927년 9월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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