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信澤
信澤1885. 2. 1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맹산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덕주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85년 2월 10일 평안남도 영원군(寧遠郡) 소백면(小白面) 와룡리(臥龍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나병길(羅柄吉)과 나신득이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경술국치 이후 평안남도 영원경찰서에서 순사로 근무하다가 생각을 바꿔 독립운동에 나섰다. 1920년 11월 여성 독립운동가인 조신성(趙信聖)이 동지들이 피신하는 것을 돕다가 경찰에 붙잡혀 영원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 그녀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1921년 조신성이 활동하고 있던 맹산독립단(孟山獨立團)에 가입하였다. 맹산독립단은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국내지단으로서, 덕천지단(德川支團), 호굴독립단(虎窟獨立團), 평남독립단(平南獨立團)으로도 불렸다. 평안남도 영원·맹산(孟山)·덕천(德川) 등지에서 일제 기관의 파괴, 단원 확대와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 선전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3월 10일 나병삼(羅炳三)으로부터 900원을 받아 맹산군으로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단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0년 3월 20일 덕천군(德川郡)에서 본격적으로 무기 확보와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영원경찰서의 직원 봉급이 덕천우체국으로부터 영원우체국에 운송된다는 것과 그 날짜를 단원들에게 미리 제공하여 차질 없이 탈취 계획이 세워질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우편물과 순사의 봉급을 옮기는 일본 순사 박의창(朴義昌)을 덕천군 풍덕면(豊德面) 덕주령(德周嶺)에서 처단하고 현금 5,500원과 권총 1정 등을 빼앗았다. 이 사건은 ‘덕주령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3,000원은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 평안남도 총무 김봉규(金琫圭)에게 전달되었다. 이후에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속하다가 평안남도 경찰부의 후원을 얻은 맹산경찰서의 추격으로, 1921년 6월 20일 근거지인 맹산 선유봉(仙遊峰) 아래 위치한 호랑이굴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평양검사국에 압송되었다. 덕주령 사건으로 인해 1921년 11월 2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나병삼과 함께 사형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1922년 3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 살인방조,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장물 수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경성감옥(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9년 2월 1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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