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서
南玄西1882. 8. 15 ~ 1944. 1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안성군 양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82년 8월 1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 가천리(加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남기우(南琪祐), 남현서(南玄瑞)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안성에서는 4월 1~2일에 걸쳐 약 2,000여 명의 원곡면 주민과 양성면(陽城面)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4월 1일 저녁 8시경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 등의 주도로 원곡면 주민 약 1,000여 명이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향하였다. 양성면 경계의 성은고개에서 최은식·이유석·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 등이 한차례 연설을 한 뒤 동항리로 들어섰다. 같은 날 밤 9시경 동항리에는 양성면 주민 수백 명이 모여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몰려가 유리창·담·기물 등을 부수고 각종 물품들을 불태웠다. 이때 이덕순(李德順)·이병주(李炳柱) 등과 함께 주재소 사무실·숙소 등에 방화를 하였다. 이어 저녁 11시경 양성우편소에 몰려들어 정내면(鄭內冕)·이덕순 등과 사무실·담·전신기구·물품 등을 부수고 이를 실외에 모아 불을 질렀다. 또한 우편소로부터 안성으로 통하는 전신선을 절단하고, 도끼로 전주 3개를 넘어뜨려 통신을 끊었다. 4월 2일 새벽 2시에는 일본인 잡화상의 가택으로 몰려가 창문을 부수고 점포와 주거지도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양성면사무소도 습격하여 물품을 부수고 불태웠다. 또한 일본인 대금업자의 집에 몰려들어 가옥·물품·서류 등을 파괴하고 소각하였다. 이어 오전 3시경 외가천리의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 사무소와 숙직실 등에 불을 질렀다. 일본 경찰이 시위 군중을 대상으로 발포했지만, 탄환 부족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지 못하였다. 안성경찰서는 사후에 원곡면과 양성면 주민 수백 명을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하였다. 1919년 4월 26일 안성경찰서가 수신한 동행보고서와 5월 6일 안성경찰서에서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검사 기타무라(北村直甫)에 보낸 의견서에는 원곡면·양성면 만세시위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있다. 하지만 소재 불명으로 기소 중지 처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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