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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南允西

186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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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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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旌善)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정선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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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민긍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도암면(道岩面) 봉두리(鳳頭里)출신이다. 1908년 당시 판결문에 44세로, 186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8월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시작된 초창기부터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정미의병의 항쟁은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된 직후인 1907년 8월 5일에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특무정교(特務正校, 현 원사) 민긍호는 일본군 충주수비대(忠州守備隊) 니노미야(二宮) 소위(少尉)가 원주진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민긍호는 300여 명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원주의 우편취급소를 습격하고 일본 군경(軍警)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민긍호는 해산 군인들을 의병부대로 재편성하여 강원도과 충청도 일대에서 일본을 상대로 유격전을 수행하였다. 1907년 (음)7월 1일(양력 8월 9일)에 민긍호 의병부대의 일원이 되어 약 1년여 간 총으로 무장하고 강원도 평창군(平昌郡)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다. 민긍호 의병장이 거병한 지 불과 1주일 이내에 합류했으나, 당시의 나이를 감안할 때 원주진위대의 해산 군인 출신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08년 하반기 일제 경찰한 붙잡혔고, 1908년 11월 2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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