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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룡

金興龍

189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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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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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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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암면(龜岩面, 현재의 순창군 구림면) 안심리(安心里) 출신이다. 190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18세로, 189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다가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순창군·임실군(任實郡)·태인군(泰仁郡)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순창 출신인 양윤숙은 1908년 7월 순창군 구암면 일대에 위치한 회문산(回文山)에서 창의하였다. 양윤숙 의병부대는 1,200여 명의 지원자 중 120명을 추려 병력을 편성할 정도로 정예 병력이었다. 더불어 총기 270정과 칼 30자루를 확보하여 충실한 전투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양윤숙은 창의 후 주로 순창과 임실 일대에서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세력도 500~600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1908년 9월,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화암리(花岩里) 뒷산에서 일본 군경과 교전을 벌였고, 같은 해 10월경에는 화암리 앞산에서 남원수비대와 격전을 치렀다. 이어서 1909년 2월부터 3월까지 순창수비대와 교전하며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1909년 2월경 양윤숙 의병부대에 가담한 이후 부대원 2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군자금을 모금하거나 고향인 순창과 임실 일대를 정찰하며 의병활동에 나섰다. 1909년 4월 말 양윤숙 의병부대는 순창군에서 곡성군으로 넘어가는 순창군 오산면(鰲山面) 우곡리(牛谷里, 현재 순창군 풍산면 일대)에서 순사대와 교전을 벌였다. 이후에도 1909년 11월까지 부대는 순창군과 임실군, 남원군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이고,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제거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1909년 9월부터 전개된 일제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이 전개되면서 일본 군경은 양윤숙과 부하들을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특히, 10월 23일에 순창과 임실 지역으로 파견된 수색대는 의병장 양윤숙과 최산흥을 적극 수색하기 위해 변장대까지 편성하여 마을로 침투시켰다. 더욱이 이들은 순창군 쌍치면(雙置面) 피노리(避老里)에 주둔하면서 순창 관내의 면장(面長)과 동장(洞長)을 불러 모은 뒤 의병의 행적을 추궁하는 한편, 의병을 체포하지 못하게 되면 면장과 동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협박하였다. 고향인 구암면은 의병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지역이었지만 이러한 협박으로 많은 의병이 체포되었는데, 1909년 10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09년 11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같은 구암면 사람이면서 양윤숙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신성심(申成心)·유재순(柳在順)·이영선(李永先)·신구산(申九山) 등도 함께 재판을 받았다. 이때 이른바 폭동 방조죄를 적용받아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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