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춘
金化春1878 ~ 1911. 3.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성화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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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전라북도 고부군(古阜郡, 1914년 정읍에 통합) 수금면(水金面) 좌륙리(左六里) 출신이다. 190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2세로,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정미의병의 항쟁이 이어지고 있던 1908년 8월경에 이성화(李成化)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전북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지역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정미의병은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해산 군인들의 항쟁을 시작으로 농민, 유생, 광부, 포수 등 다양한 계층이 무장 투쟁에 합류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전북 고부에서도 이성화 의병장이 거병하여 점차 군세를 확장하며 일본 군경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1908년 8월경에 이성화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고부군·태인군(泰仁郡)(1914년 정읍에 통합)·순창군(淳昌郡)·부안군(扶安郡)·정읍군(井邑郡)·김제군(金堤郡)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음력 4월경에는 이성화 의병장을 포함한 9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태인군 서촌면(西村面) 송산리(松山里)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5월 즈음부터는 1908년 10월 이래 한국에 전파되기 시작한 구세군(救世軍)에 귀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09년 9월 18일 첩보를 입수한 남원경찰서에서 파견된 형사들에 의해 거주지인 고부군 수금면(水金面) 좌륙리(左六里)에서 붙잡혔다. 1909년 10월 6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1년 3월 7일 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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