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언
桂成彦1899. 1. 17 ~ 1987. 12.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1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에서 태어났다. 성장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활동 당시 만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여파가 국외로 확산하자, 만주에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11월 청산리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체포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아내 최진신(崔眞信)을 살해하였다. 이후 만주에서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여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국민부 중앙의회 부의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며 군자금 조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만주에서 조직된 항일운동 단체였다. 정의부(正義府) 대표 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이웅(李雄), 신민부(新民府) 대표 이교원(李敎元)·이금천(李金川), 참의부 대표 심용준(沈龍俊) 등은 중국 지린(吉林)에서 3부(府) 통일에 관한 비밀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통합 기관으로 새롭게 국민부가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립체제를 지향하였으나 행정 기능이 우선되었다. 주력 활동 부분은 공보·교육·농민의 권익옹호를 위한 분야였으며, 군자금 모집·일제 부역자 제거·독립군 모병 등을 위한 군사행동도 하였다. 1931년 조선혁명당의 한 부서로 편제되었으며, 1934년 말에는 조선혁명군 정부에 흡수되었다. 국민부가 조선혁명당 산하로 편제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혁명당 당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부터 조선혁명당 당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