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金弘基187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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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우변면(右邊面) 하금마둔리(下金馬屯里) 출신이다. 191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4세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정미의병 항쟁이 시작되자 소규모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미의병은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일어났다. 해산 군인들의 항쟁을 시작으로 농민, 유생, 광부, 포수 등 각계 각층이 무장 투쟁에 합류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의 김풍기(金豊基)가 권유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 (음)10월 15일(양력 11월 20일)에 충북 제천군(堤川郡) 북면(北面) 일곡리(日谷里)에서 군자금 15원과 짚신을 징발하였다. 같은 해 (음)10월 27일(양력 12월 2일)에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의병장 휘하에서 총으로 무장한 5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강원 횡성군(橫城郡) 부라오리(夫羅吾里)에서 소 두 마리를, (음)11월에는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본수리(本手里)에서 당목(唐木) 3필을 징발하였다. 1908년 (음)4월 5일 채정문(蔡正文) 의병부대에 들어가서 동료 의병 30여 명과 강원 원주군(原州郡), 충북 영춘군(永春郡)(현 단양)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음)4월 12일(양력 5월 11일)경에는 일본군 단양수비대와의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동료 의병의 도움을 받고 탈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1910년 4월 1일에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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