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金在化187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선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상마치리(上馬峙里)에서 태어났다. 1909년 재판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5세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9년 3월 김선여(金善汝)가 이끄는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다. 1909년은 1907년 말에 시작된 정미의병의 활동이 종반에 접어들고 있던 때였다. 김선여는 전북 지역의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부장(部長)으로서 약 300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활동하다가, 1909년 음력 3월 경 순창 백방산(柏芳山)에서 김응선(金應先) 등 40여 명의 의병들을 조직하여 독립하였다. 친척이었던 김선여가 독립된 부대를 조직하자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김선여 의병부대는 총기 30여 정과 도검 3자루 등으로 무장하고 같은 해 11월까지 순창군과 장성군(長城郡) 등지에서 일제의 통치 기구들을 습격하고, 의병 활동을 빙자하여 민간을 약탈하는 무리들을 응징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때 부대의 일원으로 유격전에 참여하여, 화약을 제조하여 공급하는 활동을 하였다. 1909년 8월 19일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하마치(下馬峙)와 월성리(月城里)에서 첩보를 입수한 고부경찰서 수색대에 의해 동료 의병 4명과 함께 붙잡혔다. 1909년 9월 13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