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재선

金在善

187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남원(南原)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문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남생면(南生面) 사동(沙洞) 출신으로, 그 마을 동장(洞長)이었다. 190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2세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8월부터 시작된 정미(丁未)의병은 특별히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1909년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에 일제는 호남 의병을 뿌리 뽑고자 한편으로는 선유(宣諭) 활동을 벌여 귀순을 장려했고, 한편으로는 한국주둔 일본군과 헌병대 등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8년 이후 호남의 병은 소규모 부대로 분산되어 유격전을 벌이고 있어 일제의 탄압은 여의치 않았다. 더욱이 면장(面長)과 동장(洞長)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피신해 오는 의병을 적극적으로 숨겨주거나 돌봐주고 있어 수색이 더욱 어려웠다. 1909년 6월 사동의 동장으로 같은 마을의 주민으로 잘 알고 지내던 의병 김성오(金成五)가 은신처를 부탁하자, 자택에 김성오와 가족들을 모두 숨겨주었다. 김성오는 1908년부터 1909년 8월까지 전라남도 곡성군(谷城郡)과 남원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전규문(田圭文)의 의병부대에 참여한 의병이었다. 그러나 일본 군경의 의병 탄압이 강화되고, 고향 마을에 대한 수색과 추격이 좁혀 오자 몸을 의탁한 것이었다. 이에 김성오와 가족들을 자택에 보름이 넘도록 숨겨 주었다. 그러나 일제는 호남에서 주민들의 의병 보호를 금지하기 위해 더욱 잔혹한 대응책을 세워 주민들까지 핍박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1909년 6월부터 일제는 변장대(變裝隊)와 변장정찰대(變裝偵察隊)를 본격적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파견하여 곳곳에 숨어 있는 의병장과 의병의 소재지를 수색하였다. 수색의 효율을 더하기 위해 수색대는 마을을 대표하는 면장과 동장을 위협하고, 의병을 보호하는 촌리에는 책임을 묻겠다고 협박하였다. 실제 일본 군경은 의병 수색을 빙자하여 민가를 불태우고,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의병을 숨겨주는 주민을 붙잡아 이른바 ‘지정장닉(知情藏匿)’의 죄를 묻고 처벌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의 수색 작전 중 김성오와 가족들을 숨겨준 사실이 드러나 ‘지정장닉’으로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재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