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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진

白日鎭

1883. 7. 6 ~ 1921.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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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일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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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민회
  • · 안동임시의사회(安東臨時議事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3년 7월 6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에서 태어났다. 예수교 장로회 신자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1906년 의주군 양실중학교(養實中學校)에 입학하여 1년 간 수학한 후 1907년 미국 선교사 맥큔(George S. McCune, 尹山溫)이 선천(宣川)에 세운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 2학년에 편입하였다. 이후 의주군 중원소학교(重遠小學校) 교사로 2년간 근무하였다. 1907년 12월 최광옥(崔光玉)의 권유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였다. 신민회 가입 동기는 교육흥왕을 통한 국권회복단체라는 점이었다. 입회비 50전을 냈으며, 1909년 10월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사건 때 의연금 요청을 받고 청국(淸國) 돈 1원 60전을 냈다. 1909년 7월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 용의지회(龍義支會) 회원 겸 대한흥학회 의주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4월 다시 신성중학교에 입학·수학하는 동시에 신성소학교 교사를 겸하고 있던 중 105인사건 연루자로 붙잡혔다. 1911년 10월 일제에 의해 날조된 ‘데라우치총독모살미수사건(寺內總督謀殺未遂事件)’ 의 피의자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이 사건을 조작 날조한 일제 경찰과 검사의 자료에 따르면 신민회 선천지부(宣川支部) 반장 양준명(梁濬明) 휘하에서 차희선(車熙善)·양준희(梁濬熙)·김현식(金賢軾)·윤형보(尹衡保)·노효욱(魯孝郁)·김인도(金仁道)·김창환(金昌煥)·이재희(李在熙) 등과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122명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신민회에 가입하여 학생,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간도지역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실추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전쟁을 준비하던 중 합방되자, 총독암살모의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104명과 함께 실형을 받았다. 이때 오대영(吳大泳)·옥성빈(玉成彬) 등 42명과 함께 징역 5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104명과 함께 항소하였고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105인사건 주도자로 지목된 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안태국(安泰國)·유동열(柳東悅) 6인을 제외한 99인이 풀려날 때 함께 석방되었다. 풀려난 후 중국 안둥현(安東縣)으로 망명하여 안둥현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에 105인사건 동지인 김시점(金時漸)·오학수(吳學洙) 등과 함께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11월 관전현(寬甸縣) 홍통구(弘通溝)에서 김승만(金承萬)·김시점·오학수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이 단체는 국내외 각 지방 청년단을 통합한 단체였다. 이때 편집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1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이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그해 3월 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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