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양
朴殷陽1907 ~ 1930. 5.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농인사
- · 개성공산당
- · 제4적색대중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조선농인사
- · 개성공산당
- · 제4적색대중당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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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청교면(靑郊面) 덕암리(德岩里) 출신이다. 1929년 작성된 일제 측 자료에 따르면 22세로, 190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이명은 박명덕(朴命德)이다. 1920년대 후반 김정환(金貞煥)의 주도로 결성된 항일비밀결사 개성공산당(開城共産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정환은 1927년 1월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파주(坡州)로 돌아와서 그 해 3월 개성에서 농촌개발과 문맹퇴치 등을 내걸고 합법 단체인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를 설립하였다. 이후 김정환은 조선농인사 파주지사를 설치하고 그 지사장을 맡았다. 잡지 『농인(農人)』을 발간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운동을 모색하였다. 1927년 11월 7일 러시아혁명 기념일을 기하여 개성 만월대(滿月臺)에서 김정환·원점룡(元点龍)·박동수(朴東秀) 등이 개성공산당을 조직하였다. 개성공산당은 선전부(宣傳部) 등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을 모집했다. 개성의 계몽학원(啓蒙學院) 원장, 학교 교원 등 다양한 사람이 회원으로 가담하였다. 1928년 10월 20일 개성공산당은 당원 장삼득(張三得)의 발의로 내부 조직과 당무를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제4적색대중당(第四赤色大衆黨)으로 개편되었다. 제4적색대중당은 원점룡이 책임비서를 맡았으며, 농촌에서 선전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이날 원점룡의 권유로 제4적색대중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같은 해 11월 23~24일경 동료들과 함께 개성으로 출동한 인천경찰서 형사대에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오랫동안 조사를 받은 후 1929년 6월 29일 예심이 종결되었다. 김봉철·이경룡·원점룡 등 당원 11명과 함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폐결핵에 시달려 극도로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 해 8월 24일 변호사 허헌(許憲)의 주선으로 병보석을 신청하였다. 하지만 보석 보증금 100원이 없어서 고생하다가 서울에 있는 동지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풀려났다. 개성의 자택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으나 계속 병세가 악화되었다. 같은 해 10월 21일 열린 개성공산당 사건 공판에서 분리심리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결국 한 번도 재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1930년 5월 1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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