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洪樂
洪1922. 5. 10 ~ 2000. 1.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청년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조선독립청년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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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922년 5월 10일 충청북도(忠淸北道)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 거봉리(巨鳳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산홍락(金山洪樂)으로 고쳤다. 1940년대 조선독립청년당(朝鮮獨立靑年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고향인 괴산 청천(靑川)에서 보통학교 5학년에 다니던 중, 1938년 12월 학업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갔다. 초기에는 히로시마(廣島)에서 직공(職工)·잡역부 등에 종사하다가, 1940년 5월 하순 무렵 학업을 위해 오사카(大阪)로 이주하였다. 직공, 우유배달부 등으로 지내면서 1941년 4월 사립(私立) 간사이공학교(關西工學校) 야간부에 입학하였다. 일본에서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민족차별의 실상을 체험하고, 한국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서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사카이시(堺市)에 있는 오사카직물주식회사(大阪織物株式會社)에서 일하면서 동료 직공들에게 독립을 도모하고, 동지로 교섭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다수의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그들과 자주 회합하며 민족독립의식을 고양시키고 독립 실행 방법을 협의하였다. 1941년 7월 동료였던 김태원(金泰元)을 통해, 정덕수(丁德秀)가 주도하는 비밀결사 조선독립청년당에 가입하였다. 이미 교유하고 있던 동료직공들 모두 함께 조선독립청년당에 참가할 것을 맹약하였고, 빠른 속도로 조직의 확대 강화가 이루어졌다. 당원들은 각자의 직장 동료와 학우에 대해서도 동지규합에 노력하였고, 우유배달 집단, 신문배달 집단 결성과 더불어 유도제2공업학원·간사이공업학원 등에 학생 집단도 결성되었다. 조직이 커지면서 그 동정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었고, 1941년 10월 10일 단원들은 일제히 붙잡혔다. 1942년 4월 23일 기소되었고, 그 해 9월 16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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