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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구

朴順九

1888. 11.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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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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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春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춘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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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장총단(長銃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관련 사건

  • · 장총단(長銃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88년 11월 6일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北山面) 물노리(勿老里)에서 태어났다. 한말 의병운동을 하던 부친 박영관(朴泳寬)이 1908년 일본군 토벌대에게 총살당한 일에 분개하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의병운동으로 부친을 잃은 마만봉(馬萬奉)의 형 마도현(馬道賢)이 처가 쪽 친족이다. 1919년 6월 마만봉과 함께 선친들의 복수를 결의하고, 1921년 9월 강원도 인제(麟蹄)에서 장총단(長銃團)을 조직했다. 처음에는 단원 6명으로 시작하여 총 12명이 되었는데, 이들은 3~6인씩 무리를 이뤄 경찰서 습격, 일제 경찰 살해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단원들은 주로 형제 또는 내외종(內外從)의 인척 관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강원도 인제군 가리산(伽)里(山)을 근거로, 주로 밤과 새벽 시간대를 이용하여 인제·춘천·홍천·양구(楊口) 등지에서 총 24차례에 걸쳐 경찰서 습격,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9월 6일 밤 9시경 마만봉과 함께 각자 화승총(火繩銃)을 가지고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斗村面) 자은리(自隱里)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보다 성능 좋은 총기를 입수할 목적으로, 1922년 10월 5일 밤 9시경 춘천군 동면(東面) 품걸리(品傑里) 김영주金(泳柱) 집에 들어가 엽총 1자루와 실탄 등을 입수하였다. 이후 1923년 6월 3일 두 사람은 다시 자은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했으나 총탄이 적중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결성 초기에 경찰서 습격 활동을 주로 했던 장총단은 1924년 이후부터는 주로 부호(富豪)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12월 3일 마뇌병(馬)雷(柄)·안이순(安二淳)과 함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천치리(泉峙里) 장성칠(張聖七)의 집, 1926년 4월 15일 마만봉·마남룡(馬南龍)·안이순(安二淳)·전봉학(全鳳學)과 함께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하영도(河影圖)의 집, 그 해 11월 12일과 13일 마만봉·마남룡·김석규金(錫奎)와 함께 인제군 남면 금부리(金富里) 채봉묵(蔡鳳默)의 집과 홍천군 내촌면(乃村面) 광암리(廣巖里) 장원길(張元吉)의 집 및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掛石里) 박원약(朴元若)의 집, 1927년 4월 22일과 23일 마만봉·김석규·안이순과 함께 춘천군 동내면(東內面) 신촌리(新村里) 지성운(池聖雲)의 집과 상걸리(上傑里) 박명섭(朴明聶)의 집, 그 해 11월 24일 마남룡·김석규·안이순·전봉학과 함께 위 채봉묵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신문지상에서는 장총단 사건에 대해, “관계된 기록은 무려 수만 장에 달하여 조선공산당 사건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 미수, 강도, 가택 침입, 강도 미수죄로 징역 13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5년 4월 가출옥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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