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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致鉉

致鉉

1897. 10. 10 ~ 194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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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致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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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봉산(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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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애국여자청년회
  • · 조선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2) 1897년 10월 10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원면(沙院面) 사리원서리(沙里院西里)에서 태어났다. 김지환(金之煥)이라는 이명이 있다.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사립 선천고등보통학교(宣川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17세 때 기독교에 입교하였고, 사리원서리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선천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집사 박봉용(朴鳳容)의 권유로 사리원 장로회 교회당에서 박경애(朴敬愛)·우신애(禹信愛) 등과 함께 애국여자청년회(愛國女子靑年會)를 조직하였다. 청년회 회원은 장성심(張聖心)·방선화(方善化)·박효배(朴孝培)·정관유(鄭寬有)·한신견(韓信堅)·박효섭(朴孝燮)·백신관(白信寬) 등이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는 데 힘쓰고 관련 인쇄물을 배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조선독립청년단에도 가입해 활동하였다. 조선독립청년단은 이원직(李元稙)·손재흥(孫再興)·김청풍(金淸風) 등이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서울에 교통국을 설치해 서로 연락하면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와 『독립신문』, 잡지 『신한청년』 등을 일반에 배포하는 한편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로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일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1920년 7월 7일 김청풍·권국빈(權國彬) 등과 함께 『독립신문』과 『신한청년』을 서울의 이원직·정의도(丁義道)에게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독립신문』은 의주의 신학열(申學烈), 비현(批峴)의 김원흠(金元欽), 평양의 김창빈(金昌彬), 사리원의 손재흥(孫再興) 등을 통해 전달받았는데, 옷가지와 함께 버들고리짝(柳行李) 2개에 담겨 있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 남대문역까지 운반한 후, 인력거로 도렴동(都染洞) 종교(宗橋) 예배당으로 운반해 오(吳) 목사의 집에서 전달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조선독립청년단 단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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