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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규

姜徹奎

1887 ~ 19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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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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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간도참변(間島慘變)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생년월일 및 성장 배경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20년 순국 당시 나이가 34세였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1887년 전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 거주하던 주소는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동도(東島)였다. 한민단(韓民團) 또는 한민회군(韓民會軍)이라고 불렸던 한민회(韓民會)에 가입한 후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하는 활동을 펼쳤다. 한민회는 1919년 중국 훈춘현에서 황병길(黃丙吉)·이광택(李光澤)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이며, 회원 및 병력은 대략 200명에서 5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간도에서는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간도참변(間島慘變) 또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부른다. 1920년 8월, 일본은 만주에 있던 독립군을 제거하려고 군대를 출병할 구실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 결과 1920년 10월, 중국 마적(馬賊)이 훈춘현에 있던 일본 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고 불태우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것을 ‘훈춘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구실로 일본은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로 출병하였으며, 10월 20일부터 대대적인 독립군 소탕 작전을 개시하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들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외출하지 못하였으며, 일본군이 지나가는 곳은 주검과 불바다가 있을 뿐이었다고 할 정도로 일본군의 작전은 매우 잔인하였다. 『독립신문』은 피살된 자만 3,693명에 이른다고 보도하였다. 부상자와 이재민 등의 숫자를 합치면 한국인이 피해를 본 정도는 숫자로 환산하기가 어려웠다. 1920년 10월 25일 농업에 종사하고 한민회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진공을 계획하던 중 일본군에게 붙잡혀 보병 제75연대에 의해 총살당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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