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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식

朴琮植

1896. 9. 15 ~ 195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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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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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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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종교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1896년 9월 15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외암리(外岩里)에서 태어났다. 1913년 서울 중앙학교 중등야학교(中等夜學校)에서 수학하였다. 대종교(大倧敎) 신자로 대종교를 국교로 하는 제2신대한제국(新大韓帝國) 건설을 계획하였다. 만주에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가를 모집하고 비밀리에 군사훈련을 시켜 한국의 독립을 이루고자 하였다. 1916년 5월에는 서울에 거주하던 친일파 부호 민영휘(閔泳徽)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여 “거사에 찬성하여 이에 필요한 비용의 제공을 승낙하기를 바라며, 만약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토멸대(討滅隊)를 조직해 가서 징벌을 가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때 위협을 느낀 민영휘가 종로경찰서장에게 편지를 써서 고발하는 바람에 붙잡혀 1916년 7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공갈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1919년 3월 19일 함안읍내에서 함안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안군 만세시위는 봉성동의 조한휘(趙漢輝) 등이 고종의 인산(因山)날을 기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한 후 독립선언서를 얻어 귀향하면서부터 계획되었다. 3월 9일부터 일어난 만세시위는 4월 13일까지 11회 이상 지속되었고, 함안읍내 시위를 주도하던 대산면代山面 서당 훈장 안지호(安知鎬)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자 구출하기도 하였다. 이어 1920년 무렵 경남 마산 등지에서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온 군자금 모집책 송두환(宋斗煥)과 함께 활동하던 중, (음)12월 23일 경북경찰부 고등경찰에 붙잡혔지만 묵비권을 행사하여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3년에 또 다시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1924년 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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