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우
南容祐1880. 6. 20 ~ 1965. 1.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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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6월 20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출생하였다.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약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인정 등이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주장하였고 주민들은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많은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3시 지나 만세시위를 마무리하고 귀가하기 위해 천의리와 승산리(升山里)의 경계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순사들이 도주하는 것을 보고 천의주재소까지 쫓아갔다. 이미 주재소 앞에는 시위대가 모여 있었는데 이때 30여명의 시위대와 함께 천의주재소 습격을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자진 해산하자 귀가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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