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렬
南英烈1892. 7. 26 ~ 1971. 10.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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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2년 7월 2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공부하였고, 수료 후에는 유년부(幼年部)에서 한문을 가르쳤다. 대호지면의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접한 유생들과 유생들이 전한 시위 소식을 들은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면장 이인정(李寅正)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주도하여 준비하였다. 이들은 거사 지역은 순사주재소가 있는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를 선택하고,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송재만을 행동총책에 임명하고, 리(里) 단위의 연락망과 신체 건강한 청년들을 선봉행동대로 편성하였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이용하여 장터에서 배포할 독립선언문을 준비하고,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각 마을에 통보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1919년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면장 이인정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도 시위대에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더욱 사기가 고양되어 이들과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천의주재소 순사들을 무력화시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천의주재소의 경찰력만으로는 시위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본 경찰은 당진경찰서의 경찰력을 지원병력으로 급파하였는데, 이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위대와 함께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후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24일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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