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희
南信熙1885. 5. 24 ~ 1957.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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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5년 5월 24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3일에 치러진 고종의 장례식 참여를 위해 상경한 도호의숙 출신 유생들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열기가 서산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에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행동총책 송재만을 중심으로 사전에 비밀연락망을 구성하였다. 이때 도이리의 연락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4월 4일 아침 대호지면사무소에 모인 약 600여 명의 주민들은 이인정 면장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부터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진압하려는 천의주재소(天宜駐在所)와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발포하면서 부상자들이 생겨났다. 이에 시위대는 천의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한 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검거에 나설 때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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