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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직

南相直

1895. 3. 10 ~ 194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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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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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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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3월 10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桃李里)에서 도호의숙(桃湖義塾)의 설립자인 남규희(南圭熙)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도호의숙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남상돈(南相敦)·남상락(南相洛)·남윤희(南潤熙)·남상은(南相殷) 등과 함께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열기가 서산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 주민들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의 지시에 따라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정미면에 있는 천의(天宜)시장을 향해 행진을 하였다. 천의시장까지 가는 사이에 군중의 수는 배로 늘어나 800여명이 되었다. 행렬이 천의시장에 이르러 태극기를 시장 광장에 세우자 시장에 모여 있던 장꾼, 인근 주민들이 합세하여 군중은 1천 명이 넘게 되었다. 오전 11시경 남주원의 뒤를 이어 군중을 상대로 연설하였다. 이어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정미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앞, 천의시장을 돌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진압을 위해 출동한 우에하라(上原當定八) 순사와 이재영 순사보 등이 태극기를 압수하고 권총을 발사하자, 시위대는 우에하라 순사를 붙잡아 구타하였다. 이어서 시위대는 주재소를 향하여 투석하여 출입문을 파괴하였다. 천의주재소의 응원 요청에 따라 당진경찰서에서 파견된 무장 경관 니미야(二宮)와 다카시마(高島)는 권총을 쏘며 시위 군중을 제지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다음 날인 4월 5일 새벽 홍성에 주둔한 수비대 1소대가 대호지면에 도착하여 주도자를 색출한다고 200명에 가까운 주민을 검거할 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저술로는 『우주원론(宇宙原論)』과 『예악통경(禮樂通經)』 등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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