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돈
南相敦1888. 12. 9 ~ 1921. 6.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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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12월 9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동강(東崗)이다. 남택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의령 남씨 문중에서 설립한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 3월 남주원(南柱元)·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지역 유생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열기가 서산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4월 4일 면장 이인정(李寅正)이 이끄는 시위대는 정미면 천의(天宜) 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천의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때 1천 여명의 시위대를 앞장서 이끌었다. 이때 진압을 위해 일제 경찰이 태극기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시위 군중을 향하여 권총을 발사하였다. 분노한 군중들은 순사를 붙잡아 구타하였다. 이어서 주재소를 향하여 투석하여 출입문을 파괴하였다. 천의주재소의 응원 요청에 따라 당진 경찰서에서 파견된 무장 경관들이 권총을 쏘며 시위 군중을 제지하여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다음 날 새벽 홍성 주둔 수비대 1소대가 대호지에 도착하여 주도자 색출에 나서 200명에 가까운 주민을 체포하였다. 1919년 4월 23일 일본 경찰에 붙잡혀 5월 13일 기소되었다.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함으로써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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