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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원

南基元

1879. 12. 18 ~ 192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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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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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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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12월 18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송전리(松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송전리는 이전부터 천도교의 교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그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천도교에 입문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고종 장례식 참여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던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유생들이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이후 서산지역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면사무소의 행정망을 이용해서는 관내 도로 보수의 명분으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로 나갔다가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는 여기에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천의장터에 도착하였을 때는 정미면의 주민까지 결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만세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진행되었다. 시위대가 해산할 무렵 당진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들이 시위참여자들과 대치를 하다가 시위대에 발포하였다. 경찰 발포에 분노하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천의주재소 습격에 앞장서서 순사보 유기우(柳冀祐)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날 만세시위 직후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3일간 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검거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체포되지 않았다. 다시 4월 8일 송전리와 조금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4월 10일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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