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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삼

姜鎭三

1879. 2.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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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진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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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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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1927년 국내 잠입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79년 2월 13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죽전리(竹典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안창환(安昌煥), 안창일(安昌一), 안정근(安貞根), 정명철(鄭明哲)을 사용했다. 모친은 2세 때, 부친은 3세 때 사망하여 일명 정(丁) 첨지라는 인물에 의해 양육되었다. 7세 때 정 첨지와 함께 원산(元山)으로 갔다. 10세 때 정씨 부부가 죽자, 김(金)모 씨를 따라 성진읍(城津邑) 내 ‘새벌’ 마을로 이주하였다. 15세 때 홀로 청진(淸津)으로 이주하여 엿장수를 하며 살았다. 20세 때 이씨를 처로 맞았다. 그 이듬해 북간도 룽징으로 건너가서 딸 둘을 낳았다. 그러나 24세 때 처와 아이들을 모두 잃었다. 33세 때까지 북간도를 전전하며 엿장수나 양귀비 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만주에서 조직된 참의부(參議府)에 소속되어 국내와 중국을 오가며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참의부는 1923년 9월 정식으로 결성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 주만참의부(駐滿參議府)가 정식 명칭이다. 남만(南滿)의 지안(集安), 푸쑹(撫松), 창바이(長白), 안투(安圖), 퉁화(通化), 류허(柳河)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抗日戰)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국내 진공 작전에 주력하였다. 부대 편성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에 백광운, 제2중대장에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에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에 허운기(許雲起), 중앙의회의 장에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民事部長)에 김소하(金篠廈) 등이 임명되었다. 1922년 지린성(吉林省) 창바이(長白)현 고백(沽伯)의 음식점에서 참의부 단원 김청산(金靑山)·차동산(車東山)·채성찬(蔡成讚)·안창현(安昌鉉) 등의 권유로 참의부에 가입하였다. 1922년 음력 10월에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파르티잔산스크(水淸)로 이사하여 겨울에는 어물 행상을 하고, 1923년에는 양귀비 재배소에서 노동하여 약 200원의 돈을 모았다. 이 돈을 가지고 훈춘(琿春) 달내자에서 김청산과 차동산을 만나 군자금으로 제공하였다. 1927년 음력 2월 김청산, 차동산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황해·충청·함경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가을경 평북 덕천군(德川郡) 부근에서 참의부 대원 김청산의 지휘를 받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다. 이 때문에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5일쯤 있다가 대구형무소로 옮겨져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음)1월 2일 출옥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31년 음력 2월 다시 국내로 들어와 함경·강원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당시 그가 활동한 지역과 접촉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음력 3월경 함남 덕원군 현면의 안채형(安彩瀅), 함흥군의 안기항(安基恒), 함북 정평군 춘류면의 안근모(安謹模) 및 이병준(李秉俊), 음력 5월경 평강군 현내면의 김덕삼(金德三), 동군 평강면의 정의식(鄭宜植) 및 이태윤(李泰潤), 이천군 이천면의 김형구(金瀅九), 음력 6월경 함북 북청군 거산면의 안병훈(安炳勳), 황해도 곡산면의 김창현(金昌玄), 이천군 산내면의 이능환(李能煥), 음력 7월경 이천군 용포면 노진성(盧鎭成), 함북 성진군 학동면 안도철(安道哲), 음력 11월경 같은 곳의 고문하(高文河), 음력 12월경 이천군 용포면의 이인환(李麟煥), 동군 판교면 안영달(安永達), 김화욱(金華旭), 동포면 윤상금(尹尙琴) 등이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당시의 판결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훈춘에서 조선 독립의 조직 참의단 안창현 등을 만나 독립 자금 모금에 협력하기 위하여 경기·함남·강원 등을 방문하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을 이용하여 독립군 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으며, 조선에서 독립 만세 소요가 발발하여 조선 총독 정치는 전복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1935년에는 경기 가평(加平)·포천(抱川), 강원 회양(淮陽) 등지에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가 구속되어, 강원 철원지청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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