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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

金鎔勳

1912. 2. 5 ~ 198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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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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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원(平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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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어은소년야학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2년 2월 5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영유면(永柔面) 어은리(漁隱里)에서 태어났다. 대농(大農)의 아들로 1930년대 활동 당시 과수원도 소유하고 있었다. 1931년 7월 만주에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이 발생한 이래 평양에서는 반일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노동자 파업이 이어지는 등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반하여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시기에 무정부주의에 의거한 반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실행 방안으로 고향에서 김성용(金成龍) 등 50여 명의 청소년을 규합해 어은소년야학회(漁隱少年夜學會)를 조직하였다. 야학회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표면적으로는 문맹퇴치를 내세웠으나 실은 무정부주의를 선전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등 청소년들에게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1936년 12월에는 조운면(朝雲面) 송천리(松千里)에 소재한 과수원 외딴집에서 김정일(金政一) 등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혁명적농민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6년 12월 초순 평원경찰서 소속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재판에 회부되어 1937년 5월 1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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