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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鏞相

鏞相

1858. 3. 20 ~ 1919.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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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鏞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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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和順)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경향의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58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도암면(道岩面) 도장리(道莊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해석(海石)이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 경향의사단(京鄕義士團)을 조직하여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어놓는 등 군자금을 마련하는 활동에 앞장섰다. 1914년 서울에서 이낙정(李樂正)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을 계획해 실행하였다. 그 해 9월에서 11월까지 종로 김태영(金泰榮) 집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국권회복의 기회가 성숙되고 있으니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지원할 것”을 권유하며, 수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 결과 유병하(柳秉夏)로부터 80원, 성기섭(成基燮)으로부터 35원, 오덕영(吳悳泳)으로부터 22원, 이 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세 사람으로부터 110원을 모금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군자금 모금 활동이 노출되어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5년 2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른 후 풀려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으며 4년간 병석에 있다가, 1919년 10월 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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