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량
南載亮1898. 2. 7 ~ 1956. 12.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울진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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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8년 2월 7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북 울진군) 원남면(遠南面, 현 매화면) 금매리(金梅里)에서 남병선(南炳旋)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남면 매화리(梅花里)의 만흥학교(晩興學校)를 졸업하였으며, 만세운동 당시 22세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원남면 매화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원남면 매화장터의 만세운동은 울진군 최초의 시위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울진군은 강원도에 속해 있었다. 강원도의 만세운동은 3월 10일 철원군(鐵原郡)을 시작으로 대체로 3월 말부터 4월 초순에 걸쳐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양양군(襄陽郡)·홍천군(洪川郡)·횡성군(橫城郡) 등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매우 격렬하였다. 울진군을 비롯한 그 외의 강원도 지역에서는 4월 중순이 되어서야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울진군의 만세운동은 서울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 없이 지역 자체의 역량만으로 전개되었는데, 만흥학교 학생들과 함께 고성 남씨와 유림계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매화장터의 만세운동은 윤병관(尹炳寬)·최효대(崔孝大)·전병겸(田炳謙) 등이 4월 5일과 6일에 걸쳐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함으로써 시위 계획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장날인 4월 11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4월 9일 윤병관·전병겸·남광호(南光鎬) 등과 함께 한 자리에 모여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가 적힌 현수막 등을 제작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오후 3시가 되자 계획대로 윤병관·전병겸 등이 시장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최효대가 만세를 선창하면서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었고, 약 1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일제 헌병은 즉각적으로 주도 인물 11명을 검거하였다. 이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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