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우
南仁祐1886. 3. 8 ~ 1967. 5.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당진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6년 3월 8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어린 시절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이후 도호의숙 출신 유생들과 함께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지역 유생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고, 이후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열기가 서산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데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유생과 지역 유지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훈(姜泰壎)·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회합을 갖고 독립 만세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다음 날인 3월 27일 다시 모여 김동운이 “(장날인) 4월 4일 오전 8시경까지 도로 수선을 위해 면민 각호 1명씩 집합하라는 공문을 작성해 구장들에게 배포하고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실행 방안을 제안하였다. 4월 3일에는 송재만이 9개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내용의 면장 명의로 된 공문을 전달하며 주민들에게 고지하도록 부탁하였다. 1919년 4월 4일 아침 면장 이인정은 600여 명의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어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7km 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천의주재소(天宜駐在所)의 순사들을 무력화시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여 일제 경찰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의 시위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홍성헌병수비대의 대대적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어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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