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남응하

南應夏

1881. 8. 21 ~ 1933. 5. 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응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1년 8월 2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괴시동(槐市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영해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영해면 만세시위는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 김세영이 주도하였다. 김세영은 평양신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유학을 단념한 채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기획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3일 일본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김세영이 붙잡히면서 만세시위 준비는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 송천동 교회 조사 정규하가 진행하였다. 이들은 기독교 세력은 물론 지역 유림의 규합에도 힘써, 영해면 병곡면·축산면·창수면 등지의 기독교도와 영덕 지방의 대표적 유림 5대 성씨, 즉 권씨·남씨·박씨·백씨·이씨 문중을 규합해 갔다. 영해면 장날인 3월 18일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정규하·남여명(南汝明)·권영조(權永祚)·박희락(朴羲洛) 등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군중들도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해산 명령을 내린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스즈키 쓰루지로(鈴木鶴次郞)와 순사 및 순사보 등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립보통학교, 공립심상소학교, 면사무소, 우편소에 대한 파괴도 이어졌다. 그로 인해 주재소 건물은 지붕과 기둥, 그리고 각 방의 표찰만 남았을 뿐이며, 공립보통학교와 공립심상소학교 또한 지붕과 기둥, 일부 토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면사무소나 우편소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여 창유리가 파손되거나 문찰 등이 떼어지는 정도에 그쳤다. 이날 만세시위 행진과 시위대의 주재소를 비롯한 시설 파괴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대대적인 검거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