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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희

南允熙

1882. 3. 27 ~ 193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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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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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당진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82년 3월 27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공부하였고, 천도교(天道敎)에 입문하여 대호지면의 북부지역 포교책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마을 출신으로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남윤희(南潤熙, 1878. 6~1944. 10)와는 동명이인이다. 1919년 4월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도호의숙 출신의 유생들은 1919년 3월 3일에 열린 고종 장례식에 상경하였다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실행하기 위해 「독립선언문」 1매와 태극기 1매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도호의숙 출신 유생들은 대호지면 면장 이인정(李寅正), 천도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지역유지들과 연대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일은 주재소가 있는 정미면 천의리(天宜里)의 천의장터에서 장이 열리는 4월 4일로 결정하였다. 천도교 조직을 통해 사전에 만세시위에 대한 연락을 받고,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 600여 명과 함께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이인정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 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宋在萬)·남상은(南相殷)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일본 경찰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진압을 위해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체포되었다.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받은 후, 4월 24일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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