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우
南時祐1884. 11. 26 ~ 1937. 1.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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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4년 11월 2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 내가천리(內加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남윤서(南潤西, 南潤瑞)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七谷里)에서 시작된 원곡면·양성면 만세시위는 최은식(崔殷植)·최두환(崔斗煥)·남경우(南慶祐)·이덕순(李德順)·이근수(李根洙)·홍창섭(洪昌燮)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4월 1일 밤 8시경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소재한 원곡면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형 남현서(南玄西)와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원곡면장 남길우(南吉祐)와 면서기 정종두(鄭鍾斗)에게 만세를 부르게 한 다음 그들을 앞세워 양성면으로 향하였다. 원곡면 시위 군중이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인 성은고개에 이르렀을 때, 시위 주도자였던 이유석(李裕奭)이 양성경찰주재소로 향해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연설하였다. 이어 홍창섭·최은식 등도 “조선은 독립국이 될 것이므로 일본의 정책을 시행하는 관청은 불필요하다”며 원곡면과 양성면 내의 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안성군내 일본인들을 몰아내자고 연설하였다. 이때 양성면경찰관주재소에 투석하기 위해 돌 2개를 들고 시위 군중과 함께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4월 1일 밤 10시경 원곡면 시위대는 양성면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해산하던 양성면 시위 군중을 만나 합류한 후, 양성면 동항리(東恒里, 구 양성 읍내)에 있는 양성면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원곡면과 양성면 시위 군중과 함께 양성면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투석을 시작하였다. 이때 창문에 투석하여 유리창을 파손시키고, 양성면경찰관주재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양성면경찰관주재소를 파괴한 후, 양성우편소로 이동하여 우편소 건물과 기물을 방화·파괴하였다. 4월 2일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이때 앞장서서 면사무소에 있는 게시판을 파괴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일본군과 일본 경찰이 시위 관련자를 대대적으로 검거하던 5월 8일에 붙잡혔다. 1920년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燒燬), 소요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1월 22일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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