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순
南勝淳1857. 2. 8 ~ 1925. 2.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9)
관련 사건
- · 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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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9) 1857년 2월 8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윤암동(尹岩洞, 현 점곡면 윤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점곡면의 만세시위는 의성군 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영향을 받아 촉발되었다. 점곡면에서는 3월 15일에 일어난 안평면(安平面) 대사동(大司洞)의 만세운동 직후부터 송내동교회 조사(助事) 권수백(權秀伯)을 중심으로 만세시위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곡면과 이웃한 의성면(義城面)에서 3월 18일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소식에 김태호(金太鎬)는 동지를 규합해 당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날 밤 9시경 점곡면 사촌동(沙村洞) 앞길에 모인 30~40명의 주민들은 김태호의 선창을 시작으로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밤 11시경에 자진 해산하였다. 3월 19일에는 아침부터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사촌동 앞길에 모여들었다. 김태호 등의 주도하에 시위대는 점곡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를 포위하고 진입을 시도하다가 점심때쯤 흩어졌다. 이 소식을 듣고 같은 날 오후 4시에 장남 남규우(南圭佑)와 함께 “점곡면 사촌동의 김씨 양반이 조선독립운동을 일으켰으니 우리 남씨 양반이 조용히 있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면서 윤암동(尹岩洞) 주민 20여 명을 모아 사촌동으로 향하였다. 3월 19일 밤 9시경 사촌동 거리에는 사촌동·서변동(西邊洞)·윤암동·송내동(松內洞) 등의 주민 5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몰려갔고 주위를 돌면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3월 20일 새벽 1시경 일본 경찰의 위협 발포로 해산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신문과정에서 “시위운동을 한 목적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19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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