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희
南盛熙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관련 사건
- · 의령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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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4)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의령면(宜寧面) 동동리(東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의령면 만세시위는 동동리에 사는 구여순(具汝淳)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갖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를 규합하면서 시작되었다. 귀향 즉시 청년 유지인 정용식(鄭容軾)·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 등과 만난 구여순은 장날인 3월 14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용덕면(龍德面) 면장이던 강제형(姜齊馨)에게 독립선언서의 등사를 부탁하여 면사무소 등사판으로 수백 매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이 계획을 알리고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1시 구여순은 의령면 장터에서 단상에 올라 독립 만세를 부를 것을 주장하였고, 주도자들은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때 의령공립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약 300명의 군중이 결합하여 시위대는 약 3,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시장을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경찰서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고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5일 의령향교 앞에 다시 모인 1,500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경찰서와 군청 앞을 행진하였다. 이날 만세시위가 끝난 후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3월 16일에는 70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서로 몰려가 검거된 주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진주로부터 출동한 일본군 부대의 진압으로 해산되었다.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항소했지만, 그 해 7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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