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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훈

南相薰

1885. 4.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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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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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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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안성군 양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5년 4월 2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양성면(陽城面) 추곡리(楸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남명삼(南明三)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양성면의 만세시위는 인근 지역의 만세시위에 자극받은 박천봉(朴千鳳)·홍창수(洪昌洙) 등이 주도하였다. 4월 1일 저녁 박천봉과 홍창수가 양성으로 가서 만세운동을 할 것이니 동참할 것을 권유했을 때, 함천봉(咸千奉)·윤종근(尹鍾根)·김군오(金君五)·박운서(朴雲西)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에 추곡리 주민들과 함께 오후 9시경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에 위치한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였다. 해산 후 돌아가던 오후 10시경 양성공립보통학교 앞에서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元谷面) 주민 1,000여 명과 만나 다시 양성경찰관주재소로 이동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양성경찰관주재소에서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돌을 던졌다. 이로 인해 양성경찰관주재소 사무실과 기숙사 숙소 1동이 전소되고 서류와 가구 등이 불탔다. 시위대와 함께 양성우편소로 이동해 만세를 부르고, 돌을 던지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로 인해 양성우편소 사무실과 집기류 등이 파괴되었다. 또한 시위대는 일본인 잡화상 외리여수(外里與手)의 집으로 몰려가 돌을 투척하고, 상점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어 시위대와 함께 양성면사무소로 이동해 만세를 부르며 돌을 던져 면사무소 건물과 집기류 등을 파괴하였다. 4월 말 무렵 일본군과 경찰이 시위 관련자들을 검거할 때 안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5월 11일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20년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은 기각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921년 3월 20일에 고등법원에서 기각하면서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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