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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은

南相殷

1886. 1. 17 ~ 195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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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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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提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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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월군 양변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6년 1월 17일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제천읍(提川邑) 고암리(古岩里, 현 제천시 고암동)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양변면(兩邊面)(현 주천면) 금마리(金馬里)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강원도 영월군 양변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양변면의 만세시위는 금마리의 박씨(朴氏) 집성촌에서 양변면 면장을 지낸 박수창(朴受昌)의 주도하에 추진되었다. 박광훈(朴光勳)·이병익(李炳翼) 등으로부터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탁원근(卓源瑾)과 함께 만세운동 계획에 동참하였다. 박수창·박광훈 등과 협의하여 양변면 장날인 4월 21일을 만세시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에 주민들에 대한 연락과 참여 독려를 담당하여 주도자들과 함께 각 마을을 방문해, 「만세연명부」를 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월군수 석명선(石明瑄)이 농사에 대한 강연을 위해 4월 20일 양변면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강연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영월군수 석명선의 방문 날짜가 애초에 만세시위 날짜로 계획한 4월 21로 변경되었다. 그날 오전 11시경 석명선이 금마리를 방문하여 마을의 원로인 박수창에게 「만세반대자명부」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박수창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오히려 석명선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석명선이 이를 거부하고 주천리(酒泉里)로 이동하려 하자, 박광훈·이병익 등 주민 30여 명과 함께 길을 막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라고 하고, 「만세연명부」에도 서명하게 하였다. 군수인 석명선이 강요에 못 이겨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2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석명선을 ‘일제의 앞잡이’라고 성토하기도 하였다. 석명선이 돌아간 뒤, 그로부터 연락받은 양변헌병파견소의 파견소대장 나카보리(中堀)와 보조원 조병욱(趙炳旭)과 헌병 5명이 금마리로 출동하였다. 일본 헌병들은 만세운동 참여자를 색출해 검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같은 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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