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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병희

南秉熙

1900. 2. 20 ~ 195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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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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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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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함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900년 2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금암리(金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함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안면 만세시위는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3월 5일경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 지역 청년들에 의해 계획되었다. 대산면代山面의 한문 교사인 안지호安知鎬가 이들의 배후에서 참모 역할을 하였다. 3월 18일 밤 이기석(李基錫)은 조한휘 등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는 분량이 많아 종이 한 장으로 등사하기 어려워서 개작하였다. 이어 김도권(金道權)이 가져온 안신학교 등사기로 이희석(李喜錫)·이찬영·조한휘·조병흠 등이 수백 매를 인쇄하였다. 그리고 각지로 연락원을 밀파하여 동지들로 하여금 군중을 규합하여 거사일에 약정된 장소로 모이도록 하였다. 1919년 3월 19일 12시경 주도 인물들은 비봉산에 올라 고천제(告天祭)를 지낸 후 군중과 함께 봉성동(鳳城洞)으로 모여들었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시위 군중들에게 배부되었고, 태평루(太平樓)에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이희석이 민족의 염원을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미리 제작한 구한국 문장(紋章)을 새긴 깃발을 휘둘렀다. 오후 2시경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를 이끌고 함안경찰관주재소로 시위 행진을 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마산경찰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현지 일본 경찰들은 무력으로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에 투석하고 기물을 파괴하면서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함안군청으로 가서 함안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등기소·우편소·부산지방법원 함안출장소·함안심상소학교·함안공립보통학교 등으로 가서 기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 40분경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이 도착해 현지 일본 경찰과 합세하여 주도자를 검거하는 가운데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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