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하
南炳夏1894. 2. 18 ~ 1947. 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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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4년 2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대동(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32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영해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해면 만세시위는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平洞) 교회 조사(助事)(안수 받지 않은 목사) 김세영(金世榮)의 발의와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 권태원(權泰源) 및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 종사자들이었으나, 기독교 신자의 동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유림의 규합에도 힘썼다. 권태원은 송천동 권씨 일족을 동원하기로 하고, 정규하의 권유를 받은 권상호(權相鎬)는 창수면(蒼水面) 인량동(仁良洞) 및 오촌동(梧村洞), 영해면 원구동(元邱洞) 등지의 권씨, 이씨, 백씨 일족을 규합하기로 하였다. 또한 권태원·정규하 등과 회합을 가진 남효직(南孝直)은 영해면 괴시동(槐市洞)의 남씨, 남여명(南汝明)은 축산면(丑山面) 하번동(下煩洞)의 박씨 일족의 규합을 분담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효직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해면 장날인 3월 18일 오후 1시경 주도자들의 독립만세 선창으로 만세시위는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스즈키 쓰루지로(鈴木鶴次郞)가 시위대에 해산 명령을 내리자 그를 비롯하여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였다. 시위대는 영해경찰관주재소를 시작으로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의 시설 파괴에도 나섰다. 시위는 이튿날인 3월 19일까지도 이어졌으나, 포항헌병분대와 대구의 보병 80연대가 증파되어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군인들의 발포로 시위대 중에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시위대 해산 이후 시위 주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속이 이루어질 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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