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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진

南晩鎭

1894. 4. 25 ~ 194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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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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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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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4월 25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원구동(元邱洞, 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남갈백(南葛百)이다. 1919년 3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영해면의 만세시위는 기독교 조직을 통해 세력을 규합해 가면서 시작되었다. 낙평동(洛坪洞)의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인 김세영(金世榮)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평양신학교로의 유학을 단념한 채 고향에 돌아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2일 김세영은 낙평동 교회의 구세군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튿날 김세영이 일본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검거됨에 따라, 이후의 만세시위는 권태원이 주도하게 되었다. 권태원은 3월 15일 병곡면(炳谷面) 송천동(松川洞)의 장로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와 만나 김세영의 계획을 전하고 그의 찬동을 얻어냈다. 권태원과 정규하의 적극적인 세력 규합 노력 속에 권상호(勸相鎬)·남효직(南孝直)·남여명(南汝明)·박희락(朴羲洛) 등이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송천동의 기독교도는 물론 권씨·남씨·박씨·이씨·백씨 등 영덕의 대표적 유림인 5대 성씨 일족들을 규합해 나갈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기독교와 유림의 연합세력이 구축되었다. 영해면 성내동시장의 장날인 3월 18일 오후 1시경 주도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행진이 이어졌다.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함께 행진하던 중 영해경찰관주재소의 스즈키 쓰루지로(鈴木鶴次郞) 주임순사가 해산을 명령하자 주임순사 이하 순사와 순사보들을 구타하고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시위대는 이어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시설들을 파괴하였다. 시위대 중 일부는 주도자들을 따라 병곡면 병곡동(柄谷洞)으로 이동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병곡경찰관주재소 및 병곡면사무소 시설을 파괴하였다. 이에 경찰과 헌병이 발포하려 하자 시위대는 오후 6시경 영해로 돌아갔다. 3월 19일에도 영해면의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오전 10시경 포항헌병분대에서 헌병대가 파견되었으나 시위대를 진압할 수 없었다. 오후 5시경에는 대구의 보병 80연대가 증파되었다. 일본 헌병과 보병은 합세하여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이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시위대 중 사망자가 생겨나는 가운데 총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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