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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학

南道學

1900. 10. 3 ~ 196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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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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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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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매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10월 3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노천리(老川里)에서 출생하였다. 남기언(南基彦)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4월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준(安準)·안광득(安光得)·임봉춘(林奉春)·장복철(張復哲)·안병문(安秉文)·신상희(申相熙) 등과 매곡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안광득이 서울에 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독립선언서」 1매를 가지고 귀향하면서 만세운동의 추진이 구체화되었다. 이들과 협의하여 밤나무 양묘장 작업에 주민들이 동원되는 4월 2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이에 각 마을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안준·안광득·안병문·장복철·신상희 등은 비밀리에 태극기 400여 매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전 11시경 양묘장으로 가서 작업에 동원된 노천리와 옥전리(玉田里)의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을 시작하였다.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면장과 직원에게 독립만세를 먼저 부르게 하고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어 황간면(黃澗面)으로 진출하려 하였으나,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가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4월 3일에도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을 다니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고, 노천리에서는 일본인에게도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4월 4일에는 오전 11시경 약 8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로 이동하여 앞마당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매일 계속되는 매곡면의 만세시위에 추풍령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진압에 나섰다. 이때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추풍령으로 연행되었다. 이에 분노한 약 150명 주민들은 추풍령까지 헌병들을 뒤쫓아 갔으나 구금자를 구출하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헌병분견소의 창고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4월 6일에는 안준·안병문 등이 구금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민 약 300여 명과 함께 추풍령헌병분견소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구금된 인사들의 구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 헌병의 진압으로 해산하였고, 주도자 대부분이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함으로써, 그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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