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원
南箕元1879. 2. 6 ~ 1961. 3.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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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79년 2월 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용흥리(龍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에 전개된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만세시위는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평소 교류가 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의기투합하면서 시위 계획은 구체화되었다. 1919년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 연극 공연장을 설치하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민영갑과 이재만은 이 연극 공연을 기회로 이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4월 1일 연극이 공연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여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들은 연극 공연 중인 오후 8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연극 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장으로 바뀌었다. 이날의 시위는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귀가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금마면의 제1차 만세시위였다. 다음 날인 4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 연극 공연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가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장에 나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동참하였고,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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