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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喜豊

喜豊

187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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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羅喜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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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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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황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송림면(松林面) 화석리(花石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천도교인으로 짚신 제조업에 종사하다가 황주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황주면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출신인 천도교 중화교구의 최창룡(崔昌龍)이 황주에 와서 천도교 황주교구 교구장인 김성준(金聲駿)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최창룡은 김성준에게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 10매를 전달하였다. 김성준은 황주면 천도교의 중심 인물인 황기타(黃己拕) 등과 논의를 통해 황주면(黃州面)의 장날인 3월 2일 성남리(城南里) 남천(南川)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황주면 천도교 주요 인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기로 하였다. 황기타는 독립선언서 배포를 담당하는 한편, 성남리의 김병식(金炳植), 황강리(黃崗里)의 김광섭(金光燮)과 최석길(崔錫吉),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趙鎭永) 등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렸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독립을 염원하다가,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발표 이후로 전국에서 만세를 외치고 궐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천도교 인사로부터 황주면(黃州面) 장날인 3월 2일 성남리(城南里) 남천(南川)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을 전해 들었다. 1919년 3월 2일 주민들과 함께 남천시장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오후 2시 곳곳에 독립선언서가 나붙은 남천시장에는 수백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모였다. 천도교인 황기타 등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호응해 독립만세를 따라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남천시장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안면(齊安面) 남천리(南川里)가 황주면 성남리로 행정구역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시장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곳이었다. 이 날 시위에는 황주군 대부분 지역에서 온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때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며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를 빠져나와 경찰서 앞으로 행진하였다. 경찰은 이를 제지하고 시위대 선두에 있던 몇 사람을 붙잡았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경찰서로 몰려가서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경찰이 응하지 않자 시위대는 경찰서 유리창을 부수고 한국인 경찰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도 하였다. 이후 기독교 예배당까지 행진한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정돈하였다. 이때 시위대 앞에 나서서 기독교인들에게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다수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남천시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독립만세를 외친 시위대는 시위를 마무리하였다. 이때 다수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천도교 황주교구 교구당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였다. 그 사이 경찰들은 소방조까지 동원해 감시와 순찰을 강화하였고, 다른 지역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날 오후 5시, 경찰과 헌병들은 만세시위 주도자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천도교 황주교구의 교구당으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교구당 안에 있던 천도교인들과 만세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로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80여 명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9일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나는 한일병합 이래 조선 독립의 기회를 희망하던 중 다행히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 취의 또는 영토 해제의 문제를 듣고 어떤 시기의 도래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고, “나도 조선 민족의 의무를 표하기 위해 황주 군민이 읍내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일제히 부를 때 만세를 불렀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그 해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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