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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在星

在星

1887. 1. 26 ~ 196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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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羅在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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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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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1월 26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창수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8일 창수면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들이 영해(寧海)의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나섰다가, 계획을 변경해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러 시간이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고 지역 주민들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이에 신기동 마을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협의 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9일 박재복(朴載馥)으로부터 만세시위 참가 권유를 받고 창수경찰관주재소로 갔다. 이 날 오후 4시 이수각(李壽珏)·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이현설 등은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그 기세를 몰아 군중을 지휘하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주재소의 사무실·객사, 주임순사 숙사의 벽과 천정을 파괴하고 또한 집기와 서류를 파손하였다. 이어 주임순사 다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와 한국인 순사보 권찬규(權燦奎)·송상구(宋相九) 등이 박석문(朴石文)·오용이(吳龍伊)·이강복(李康福)·박석문(朴石文)의 집에 은닉해 둔 각종 물품과 서적을 파손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부대가 창수동으로 하사 이하 6명을 급히 보내 시위대 진압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시위대와 함께 오후 7시에 철수하여 탄압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일본 군경이 대대적으로 실시한 만세시위 주도자 체포 작전으로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6월 31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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