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淳化
淳化1880. 12. 9 ~ 1958. 11.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동화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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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12월 9일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동화면(冬火面) 매남리(梅南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군위(軍威)이고 직업은 목수였다. 1919년 4월 5일 일어난 금천군 동화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금천군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3일 북동부에 위치한 서천면(西泉面)에서 시작되었다. 서천면은 천동면(泉洞面)·석적면(石積面)·서가면(西加面)을 통합하여 만든 면으로, 1914년 금천군과 통합된 옛 토산군(兎山郡) 지역이었다. 옛 토산 지역에서는 7일과 10일에도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옛 토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만세시위가 본격화되면서 금천군 전체로 확산된 것은 4월부터이다. 4월 1일 노형근(盧馨根), 이상로(李祥老) 등의 주도로 전개된 백마면(白馬面) 용성리(龍城里) 만세시위가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4월 2일은 합탄면(合灘面) 매후리(梅後里)와 고동면(古東面) 구성리(鷗城里)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3일에는 금천면 금천읍내, 구이면(口耳面) 관문리(冠門里)와 미당리(美堂里), 숙인면(宿仁面) 행정리(杏亭里), 현내면(懸內面) 송정리(松亭里)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5일에는 산외면(山外面) 신명리(新明里)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는 등 금천군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1919년 4월 5일, 동화면 법천리(法川里)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날 시위에는 30여 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매서리(梅西里)의 유민수(柳旼秀)와 문탄리(文灘里)의 유시복(柳始馥)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문탄헌병주재소(文灘憲兵駐在所)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를 제지하는 일본 헌병과 충돌하였다. 이후 주도자 체포 과정에서 4월 6일 헌병들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다시 “조선 민족이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본인도 민족의 한사람으로서 애국 사상이 끓어올라 응하고 찬성했다”라고 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3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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