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星雲
星雲1891. 12. 11 ~ 1920. 9.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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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12월 1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주재소 앞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창수면은 영해면(寧海面)·병곡면(柄谷面)과 더불어 경상북도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영덕 북부 지역의 한 곳이다. 영덕군 최초의 만세시위였던 영해면 성내동(城內洞)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3월 18일에 창수면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시간상 영해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고 그 대신 지역 주민들과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신기동의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오후 4시에 이수각(李壽珏)·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이현설 등은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그 기세를 몰아 군중을 지휘해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 사무실·객사·주임순사의 숙사 벽과 천정을 파괴하고 집기와 서류를 파손하였다. 계속해서 주임순사 다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와 한국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 등이 오용이(吳龍伊)·이강복(李康福)·박석문(朴石文)의 집에 은닉해두었던 각종 물품과 서적을 파손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부대가 창수동으로 하사(下士) 이하 6명을 급히 보냈으나, 시위대는 그에 앞선 오후 7시에 철수하였다. 그러나 이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일본 군경의 만세시위 주도자 검거 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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