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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운

金黃雲

1890. 4. 2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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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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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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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4월 21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현 화성시 장안면)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는 김황운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명은 김규완(金奎完)이다. 1919년 고향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雨汀面)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3일 정오에 마을의 소사(小使)인 이원준(李元俊)이 찾아와 만세운동에 참여하라고 알려주었다. 이날의 거사는 장안·우정면의 천도교와 기독교 세력, 재지 세력 등이 연합하여 사전에 계획되었던 것이다. 곧바로 구장 백낙렬(白樂烈)의 집에 찾아갔지만, 구장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장안면사무소로 떠난 후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1,000여 명에 달하는 시위 군중이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기기와 서류를 불태운 후 장안면장 김현묵(金賢默)을 앞세워 쌍봉산(雙峯山)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쌍봉산에서 내려오는 시위 군중과 합류한 후 우정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3시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한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 건물을 투석으로 파괴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기기와 서류를 꺼내어 불태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5시 2,000여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우정면 화수리(花樹里)에 있는 주재소를 습격하였는데,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향해 투석하였다. 이에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하고 도망치자 군중들과 함께 쫓아가 몽둥이와 돌로 처단하였다. 이후 주재소를 파괴하고 소각시켰다. 시위가 끝난 후 붙잡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으로 예심을 받은 결과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다. 이어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공소불수리 판결을 하였고, 같은 해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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