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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金炫九

1882. 4. 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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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현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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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鐵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철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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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철원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82년 4월 4일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철원면(鐵原面) 중리(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서 측량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철원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철원은 서울과 가깝고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하여 3월 1일 일어난 서울 만세시위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다. 여기에 3월 3일 고종 장례식에 참가하여 만세시위를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고, 200매가 넘는 독립선언서의 배포로 인해 철원군 만세시위 분위기는 일찍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천도교 철원교구의 지휘 아래 김명식(金明植)·이순철(李淳喆)·서순봉(徐淳鳳)·정동해(鄭東海)·한홍준(韓弘俊)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철원군 곳곳에 배부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살포한 천도교인 대부분이 붙잡혀 그들이 직접 만세시위를 지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천도교인들은 지도부의 검거에도 불구하고 3월 18일 철원면 장날 시위와 4월 8일 내문면(乃文面)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하였고 그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다시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이므로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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