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락
金珌洛1873. 11. 15 ~ 1919. 3.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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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3년 11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천전리(川前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자는 성옥(聲玉)이며 호는 오은(梧隱)이다. 1919년 3월 21~22일 안동군 길안면(吉安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 안동면(安東面)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 만세시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0,000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3월 17일부터 3월 23일까지가 절정기였다. 이때 안동면(安東面)·예안면(禮安面)·임동면(臨東面)에서는 수천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안동군의 만세시위가 절정기였던 3월 21일, 길안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임하면 오대동(梧垈洞)에 사는 김정연(金正演)·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장두희(張斗凞) 등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에 부응하기 위한 시위를 준비하였다. 오후 5시쯤 주도자들이 천지(泉旨) 장터에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오후 6시쯤에는 시위대가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주도자들이 면사무소로 들어가려 하자 스기모토(杉本) 순사가 가로막았다. 격분한 시위대는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출입문을 부수었다. 시위대가 다시 천지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순사 박덕한이 가로막았다. 이때 시위대는 투석전을 벌이며 항의하다가 순사들이 총을 쏘자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3월 22일 오후에 다시 수백 명의 시위대가 주재소로 몰려가 시위하였다. 시위대가 돌을 던지자, 오후 8시 순사들이 발포하며 이들을 해산시켰다. 이후 며칠 동안 시위대 참여자들을 붙잡기 위해 가택 수색을 하던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1919년 3월 2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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